9.01.2020

[나의 에세이] "개발"의 "개"자도 모르던 때에서 "개"자만 아는 지금으로

 



"개발"의 "개"자도 모르던 작년 9월부터 "개"자만 아는 지금까지 딱 만 1년이 되었다. 지금까지 나의 공부 여정을 돌이켜 정리해보기 딱 좋은 시점이다. 앞으로 더 멀리 이어질 공부를 앞두고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시간이다.


프로그래밍 공부의 Learning Curve


위의 두 성장곡선은 전혀 학술적인 근거가 없는 곡선이다. 아니, 솔직해지자면 그런 근거가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른다. 나는 그저 내가 느낀 바를 설명하기 위해 위 두 개의 그래프를 활용하는 것 뿐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왼쪽은 어느 프로그래밍 관련 공식행사에 가서 보았던 그래프의 모양이다. 흔히 프로그래밍 공부의 러닝 커브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모양이다. 정체기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그 정체기를 밀고 나간 사람은 결국 드라마틱한 성장을 이루게 된다.

오른쪽은 인터넷을 떠돌아 다니다가 보게 된 그래프 모양이다. 여기저기에서 보이기 때문에 원본의 출처가 어디인지 확실하지 않다. 나는 오른쪽 그래프의 세로축을 감정이라고 했을 때 좀 더 와닿는 설명이 된다고 생각한다. 공부 초기에는 공부 자료나 가이드라인도 많고 어느정도 틀이 잡혀 있어서 공부진도 뿐만 아니라 배우는 자의 감정도 고조된다. 하지만 일명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구간에 들어서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할 줄 알지만, 제대로 하지는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목표하는 수준까지 갈 수 있는지 방황하는 시기가 온다. 목표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런칭할 수 있는 수준 또는 취업의 문을 뚫을 수 있는 수준 등 다양하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시기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공부 초기에 빠른 성장을 이뤄내면서 큰 자기 효능감을 느꼈다면, 이 시기의 자기 효능감은 바닥을 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지만, 그게 눈에 띄는 결과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나는 이 길이 아닌가봐"하고 생각하게 된다.

나무를 키워본 사람은 안다. 나무는 우리 눈에 보이는 높이만큼이나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아니 어쩌면 더 깊고 넓다. 오른쪽 러닝 커브의 반등은 직전에 있었던 깊은 하강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뿌리가 깊고 넓을수록 눈부신 성장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인가? 아마도 아직 죽음의 계곡 속이지만 그래도 바닥은 이미 쳤다고 생각한다. 가장 심하던 감정의 소용돌이는 지나갔고, 정답이 없는 커리큘럼에도 익숙해지고 있다. 바닥을 치고 나서 얻은 교훈이 있다. 서두르면 될 것도 안 된다는 것이다. 죽음의 계곡 속에 빠지면 빠질 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너무 조급한 마음에 하루에 눈 떠서 눈 감을 때까지 밥, 화장실, 코딩만 반복한 피폐한 날들도 있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조급할 수록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나는 100m 달리기를 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커리어라는 장기 마라톤을 보고 달리는 중인 것이다.

개발은 수단일 뿐, 꿈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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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개발을 배우기 전에 나는 복수전공이었던 중국어 쪽으로 커리어를 잡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울 수록 언어는 수단일 뿐이라는 어느 교수님의 충고를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중국어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중국어와 경영, 중국어와 마케팅처럼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 두 가지 중에서도 중국어는 부수적인 우대조건의 역할이었다.

웹 개발로 방향을 틀고 나서 1년동안 공부하고 난 지금 드는 생각은 "젠장, 개발도 마찬가지네"이다. 개발이란 기술이다. 언어가 소통의 수단이듯, 개발은 창조의 수단이다. 수단만 가진 사람은 지도만 들고 있는 것이다. 반면 수단과 목표가 있는 사람은 지도 위에 빨간 점이 찍혀 있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이 길을 나선다면 어떤 그림이 펼쳐질지 상상이 간다. 수단은 목표를 만날 때만 빛이 난다.

나는 1년간 웹 개발이라는 수단을 갈고 닦았다. 아직도 애송이에 불과한 실력이다. 그러나 내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화려한 수단보다 급한 것이 바로 나만의 목표라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 그동안 취업해서 돈 벌고 싶다고 취업을 목표로 공부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대학교를 졸업하고 허무함을 느꼈던 것처럼, 취업의 문을 뚫고 나면 또 목표를 읽고 허무해질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란 꿈은 내 생활을 이어나가게 해주는 것이었지만 내 생활을 의미있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지금의 나는 목표를 고민하는 중이다. 몇가지 후보군이 있긴 하지만 아직 확정적인 것은 없다. 그래도 긍정적인 것은 무언가 공익적인 것,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1년동안 참 많은 것을 배웠지만 지난 후에 되돌아 보면 한 순간인 것처럼 짧게 느껴진다. 바라건데 지난 1년간의 공부가 앞으로 이어질 공부의 단단한 반석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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